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도서 줄거리, 청년은 미래다, 에필로그

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도서를 읽고 요약 줄거리와 내용에 대하여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. 바야흐로 백수의 시대가 도래했다. 청년 백 수, 중년 백수, 장년 백수... 도처에, 사방에 백수가 넘쳐난다. 누구든, 언제든, '백수 기간'를 거쳐 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. 그렇다면 이제 백수 에 대한 본격적 탐구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. 이 책은 바로 이런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. 또한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청년 백수에 대하여 다루었다.
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도서 줄거리
청춘은 아름다워라~. 나의 20대 무렵, 시대가 참 엄혹했음에도 이 비슷한 청춘 예찬론이 넘쳐 났다. “참 좋은 때다”, “구르는 돌만 봐도 웃음이 나지?" 등등. 물론 그 다음에 꼭 이렇게 덧붙였다. “근데 너 는 왜 그 모양이냐? 좀 꾸미고 다녀!” 그래서 생각 했다. 청춘은 아름답고 멋진데 나만 이렇게 삭았구나. 청춘은 정말 푸르른가? 우리는 청춘의 시절을 통과하려면 (예를들면)목숨을 걸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. 우리 청년들은 점점 우울해져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. 우리는 과연 이런 청춘의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?
백수에겐 꿈이 필요 없다. 사는 것 자체가 꿈이자 직업이다. 삶이 무엇인가? 관계와 활동이다. 노동은 활동으로, 삶은 관계다. 살기 위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, 관계 자체가 삶이다. 나를 둘러싼 관계를 점검해보라. 가장 먼저 가족, 이것은 혈연으로 맺어 진 천륜이다. 삶의 토대이자 베이스캠프에 해당 한다. 여기에 집착하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다.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우정을 수반 해야 한다. 우정이란? 독점적 소유를 전제로 하지 않는, 가장 자연스럽고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백수들은 바로 이 지점에 전념해야 한다.
청년은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. 소크라테스 이후 배움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, 궁극적으로 자신의 '무지'를 아는 것이다. 그 무지에서 두려움과 충동이 싹트는 법, 인간은 근원 적으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. 미래, 직업, 노후, 관계 등등. 인간을 두렵게 하는 건 많다.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충족되어도 두려움은 그치지 않는다.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. 그러므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. 알려고 해야 한다.
청년은 미래다
백수는 존재만으로 덕을 베푸는 존재다. 우선 내가 백수가 된 덕분에 누군가 일자리를 얻었을 테니까. 그 뿐인가. 백수는 당연히 적게 벌고 적 게 쓸 수밖에 없다. 이것보다 더 훌륭한 생태주의는 없다. 또 아무도 백수를 보고 긴장하지 않는다. 경 쟁심을 느끼지도 적대감을 갖지도 않는다. 저절로 평화와 힐링의 메신저가 된다.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의기소침하게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. 자본은 움직인다. 움직이면서 증식한다. 그래서 사람들을 미혹시킨다. 그 운동 과 속도감에 빠져드는 것이다. 그래서 멈출 수가 없 다. 병들 때까지, 죽을 때까지, 백수도 움직인다. 움직이되 증식하지 않는 것. 바로 순환. 고로 백수는 미래다.
일하지 않아도 100세를 산다는 건 인류사의 축복이다.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황홀한 세상이다. 그럼 그 기나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 가? 배우면 된다. 지식은 정보다. 정보의 바다에 익사하지 않으려면 기예를 익혀야 한다.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삶의 기예를, 지식과 삶이 마주치면 지성이 된다. 백수는 당연히 지성을 연마해야 한다. 그 지성이 삶과 죽음 의 경계로 나아가면 지혜가 된다. 지식에서 지성으로, 지성에서 다시 지혜로 나아가는 지평선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.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일은? 그 지평 선 위를 거침없이 달려가는 것 뿐. 이것이 백수 시대에 백세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전략이다. 단언컨대 이보다 더 좋은 삶은 없다. 고로 백수는 미래다
에필로그
백수는 시험을 위한 공부는 거부한다. 스펙을 쌓는 우매한 짓거리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. 하지만 늘 뭔가를 배운다. 백수는 노는 사람이다. 동시에 배우는 사람이다.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. 뭘 배 우냐고? 인생을 배우고 세상을 탐구한다. 세상이 스승이고 인생이 학교다. 네버엔딩. 이 앎의 지평선은 무한하다.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. 그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마침내 알게 되리라. 삶은 삶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. 오늘 하루가 곧 일생이라는 것을.
“이번 생은 처음이라"라는 말이 있다. 지금이 딱 그렇다. 디지털과 함께 자란 청년 세대는 물론이고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한테도 이런 세상은 처음이다. 보통은 새로운 시대가 열려도 기성세대는 그걸 누리지 못한다. 생의 주기가 짧기 때문이다. 그래서 늘 자기 시대의 한계 안에 머물다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.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. 갑자기 눈앞에 백세 인생이 펼쳐졌다.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난 다음에도 굉장히 긴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. 해서, 청년뿐 아니라 기성세대도 이 문명의 파도를 충분 히 목격하고 누릴 시간이 확보되었다. 그럼 어떡하지? 다시 시작하면 된다.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배 우는 거다. 디지털 세대와 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, 세대 공존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. 멋지지 않은가? 근데 그러기 위해선 우선 20세기적 인식의 배치에서 벗어나야 한다.